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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포스기 평창동 카드단말기 홍파동 무선카드기 결제기 카드기 결제시스템 임대 렌탈 대여 비용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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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쌤 2024. 4. 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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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종로구의 핵심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성내(사대문안) 지역으로 한성부의 중추 지역이었고, 상평방에 속하던 부암동, 구기동, 평창동과 숭신방에 속하던 창신동, 숭인동, 반송방에 속하던 무악동 등은 성저십리의 일부였다  이는 해외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궁궐 주변에 여러 박물관들이 개발된 것으로, 추후 관광객들의 동선과 접근성을 감안하여 이건희미술관 등 더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종로에 건설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식으로 지명이 바뀐 곳[27]이 매우 많다 

조선시대부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이 있었고, 종묘, 사직, 의정부, 훈련도감 등이 있었다  청와대[29], 국무총리 관저, 헌법재판소, 정부서울청사, 감사원 등을 비롯해 외교부, 통일부, 서울선관위, 서울특별시경찰청 등 정부기관들, 각 국가들의 대사관[30]이 밀집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의 외교적 중심지 및 서울의 행정적 중심지인 것은 틀림없다 [37] 이러한 경향은 2010년대 중반 박원순 시정 중에 잠시 주춤하여 창신동, 숭인동 등의 낙후로 이어졌으나, 2020년대 재선된 오세훈 시정 아래에서 서울 도심의 전면적인 재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종로구의 도심회귀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종로구 전체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교남동과 무악동은 인구가 대폭 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20~40대 인구가 늘고 있는 독특한 도심회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종로구의 주거환경 수준은 서울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 셀 수 없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1996년~2003년 자가용 차량 번호판도 이 순서에 따라 배정되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최중심이었지만 중구가 아닌데, 종로'구'가 탄생한 일제강점기에 경성의 중심은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번화가였던 명동 일대였고, 그래서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종로구는 '중구'라는 이름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종로구의 학군은 서울특별시교육청 5학군으로 분류가 된다 

첫째로, 종로구는 본래 사대문안을 이루며 대한민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도심으로서 수많은 조선의 궁궐과 문화재, 박물관 및 미술관이 즐비한 문화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33] 남촌은 일본인들이 살면서 중구로 이름이 정해졌다 [15]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과 창경궁, 세계문화 유산인 창덕궁과 종묘 등도 이 종로구에 속해 있어 전통과 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세종대로사거리에 도로원표가 있어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전국 이정표가 모두 이 도로원표를 기점으로 거리측정을 하는 중심지 역할도 한다 [36]

셋째로, 종로구는 사대문안 CBD를 품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직주근접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35]

종로구의 높은 주거환경은 주로 다채로운 문화시설과 풍부한 공원면적, 사대문안 CBD(서울 도심)로 이어지는 직주근접의 3가지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이로 인해 종로구의 1인당 공원면적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종로구는 당시에 북촌(북쪽마을)이라고 불렸으며 조선인 명망가[32]의 집이라거나 각종 주요 건물들도 이곳에 모여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이 지역이 조선 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종로구는 서울 30, 중구는 서울 31 하는 식으로 한다  중구와 함께 서울의 도심을 이룬다 

당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충무로 일대는 남촌(남쪽마을)이라 불렸으며, 요즘으로 치면 강남과 같은 번화를 누렸으며 북촌 여인들이 쇼핑하러 왔다   대표적인 문화재로 경복궁(광화문), 창덕궁, 창경궁 등 4대 궁궐 중 3곳이 종로구에 있으며, 그 외에 경희궁 등 소규모 궁궐도 널리 자리잡고 있다 

둘째로, 종로구는 위와 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관광지로서 단순히 녹지(도시숲)가 넓은 것이 아니라 접근성이 높은 도시공원이 다수 발달되어 있다 

수도 서울특별시의 중심인 정치 1번지[12]로 정부서울청사와 광화문광장이 있어 정치적 상징성과 중요성이 큰 곳이다  '종로'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한양의 도성문의 개폐 시각을 알려주는 큰 종을 매달았던 종루[11]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종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종로'가 되었다 [13] 행정안전부의 행정구역 코드 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기초자치단체 중 선두에 서 있는 곳이다  또한 공연시설 역시 세종문화회관을 갖추고 있으며 대학로의 여러 소극장들도 종로의 문화적 자산을 고취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성신여대 데이터사이언스센터, 케이스탯 공공사회정책연구소,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가 공동으로 수행한 2023년 사회안전지수 평가에서, 종로구는 서울 전체에서 서초구 다음으로 2위, 대한민국 전체에서 과천시, 세종시, 서초구 다음으로 4위를 차지했는데, 세부항목을 살펴볼 때 주거환경 항목은 종로구가 서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본래 종로구의 장점인 풍성한 문화재와 공원면적은 뒤집어 말하면 신도시식 재개발에 어마어마한 장애가 된다는 점이었는데, 서울시와 종로구는 이를 일차적으로 교남동 돈의문뉴타운과 무악동 등 궁궐로 인한 고도제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위치에 대규모 아파트 지역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가'들은 일본이 확립한 ~정목(丁目)에 정확히 대응한다  원도심이라고도 불린다 

1943년 조선총독부령 163호로 경성부에 구제를 실시함에 따라 쇼로구(鍾ショウ路ロ區ク)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고 그 구역이 책정되었으며,[25] 1975년 서대문구에서 구기동·평창동, 부암동, 교남동, 무악동 등을, 동대문구에서 창신동, 숭인동을[26] 편입하면서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었다  동쪽으로 동대문구, 서쪽으로 서대문구와 은평구, 남쪽으로 청계천을 맞대고 중구, 북동쪽으로 성북구와 접해있고 북한산을 경계로 북쪽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과도 접한다 [14]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결과를 발표할 때도 이 순서에 맞춰서 부른다 서울특별시의 중심부에 있는 자치구  야인시대에 나오는 번화가인 혼마치(本町)가 대표적이다 [31]

이렇듯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구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구 이름이 일제강점기 때 정해졌기 때문이다 [9][10] 구청은 수송동에 있으며,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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