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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포스기 소하동 카드단말기 철산동 무선카드기 결제기 카드기 결제시스템 임대 렌탈 대여 비용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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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쌤 2024. 4. 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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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격 당시 광명시 인구가 15만명인데 이 중 소하동 거주자는 2만여명, 하안동은 당시 미개발지였고 철산동 역시 시 승격 이후에나 주공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건설되었으니 사실상 광명동 지역에만 10만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기도의 시 

북부와 동부는 각각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남동부는 안양시, 북서부는 부천시, 남서부는 시흥시와 접한다  당시 이미 업무 과부하였던 부천, 안양지역 관공서를 대신해 광명경찰서[15]와 광명세무서[16]가 시흥군 소래, 군자, 수암면 지역[17]과 안산시까지 관할했기 때문이다 [18] 다만 역사적으로 중심지 노릇을 해 온 건 아니고 여건상 어쩌다보니 그런 기능을 잠시 부여받은거라 시흥과 안산이 어느정도 성장한 지금은 의식하고 찾지 않으면 깨닫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다가 안양천이 직선으로 정비되면서 현재는 강 건너 광명시 안에 강 옆으로 자그마한 땅만 서울시로 되어 있다거나 반대로 서울시 안에 광명 땅 조각이 들어와 있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2]

일부에서는 '빛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광명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광명이라는 지명은 단지 광명7동에 있는 굉메마을의 음차일 뿐이다  지질정보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도덕산 산맥과 소하동 일부가 석회암 지대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광명 시가지가 처음 형성될 무렵 이 도시 사람들은 서울시민이 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링크 참고로 부천, 시흥은 '경기남부서해안'(인천 포함) 권역에, 안양, 군포는 '경기남서내륙' 권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당시 광명리에서 버스로 소하리까지 가려면 영등포로 나가서 버스 타고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물론 아파트 단지 중에서도 바로 옆에 붙어 있음에도 서울과 광명이 나뉘며 가격 차이도 크다  당시의 광명시 교육청(현 경기도광명교육지원청)도 마찬가지 

경기도 내 30개 도시 중에서 시 승격이 광명시보다 더 빠른 도시로는 개성시(미수복)[13], 수원시, 인천광역시(1981년 직할시 분리), 의정부시, 부천시, 안양시, 성남시 7곳 정도다  경기도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도 딱히 광명시청에서 시흥군의 계승자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시 승격 전후의 신문기사, 1980년대 지리지, 인터넷 향토백과, 1991년판 광명시지, 광명동·철산동지(광명시청 편저) 등 각종 향토사료에서 알 수 있다 

읍 지역이 시로 승격될 당시에는 읍의 이름이 도시 이름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나, 1981년쯤엔 사실상 중심지가 소하리 서면초 부근이 아니라 광명리로 옮겨진 상태인데다가 광명출장소 관할지역을 서울 편입에서 배제시키는 의미도 있었기에[11] 소하읍→소하시가 아닌 광명시로 한 것이다  현재의 도덕산공원인 옛 방공호가 석회광산 입구였다는 말이 있고, 서울 지하철 7호선 철산역 건설과정에서 철산동 지하에 석회동굴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석회암 지대라는 지적이 틀리지는 않을 듯  좁은 면적에 여기저기 골고루 도시화가 돼있는 경기도에서 날씨가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냐만은,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시즌에 광명과 멀지 않은 안산시와 비교해보면 제법 체감이 될 정도며 이는 광명이 서울의 열섬 현상[19]을 그대로 받는데다 시가지 남부가 쭉 산으로 막혀있는 지형의 영향으로, 여름엔 광프리카가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더위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겨울에 따뜻한 것도 아니어서 냉대기후 지대이며[20][21], 철산동 기준으로 특히 개봉동, 구로동, 대림동, 가산동, 신대방동[22]과 기후가 거의 같다  장마철에 안양천 물이 불어나 일부지역이 침수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광명시는 서울(특히 영등포)의 인구 폭증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서울 편입 예정지의 개념으로 개발되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서울 편입 대신에 시로 분리된 도시이다 [14] 특히 광명시는 성남시 다음으로 서울의 팽창으로 생겨난 두 번째 도시이다  영등포권의 역사적 전신 중 하나인 조선 시대 시흥군 중 서울에 편입되지 않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기상청 AWS 실시간 자료에서는 과천과 함께 서울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경기도 최강의 폭염도시 중 한 곳이다  특히 북시흥 지역은 경찰서는 1999년, 세무서는 1996년(광명세무서 시흥지서 개서)까지 광명시 쪽에서 관할해 알음알음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 

'광명'이라는 지명은 1963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 편입 이전만 해도 지금의 광명동 일대에 국한된 명칭으로, 광명7동 신광명변전소 인근의 원광명(굉메)라는 자연촌락에서 유래되었다 

목감천, 안양천 등의 하천이 흐르며, 목감천은 광명시와 서울시 구로구, 부천시, 시흥시와, 그리고 안양천은 서울시 구로구, 금천구, 안양시와의 실질적 자연경계[23]이다 

안양천을 경계로 서울과 인접해 있는 곳에서는 하천 정비사업이 이루어지기 전 과거 뱀처럼 구불구불했던 강 모양을 따라 시도 경계가 나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광명이라는 지명이 듣보잡이었다가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미 출장소가 설치되는 1970년대쯤 되면 광명리는 소하리와는 별개의 생활구역으로 취급되었다 

도내에서는 부천시, 시흥시, 안산시와 같이 경기 서부[9]로 분류되나, 정작 생활권으로 보면 경기도보다는 서울, 특히 영등포권의 지역색이 더 강한 도시 

그래서 시 승격 초창기에는 경기 남부지역에선 얼마 안 되는 도시로서 나름대로 중심지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성도시 육성정책으로 인해 서울 편입이 좌절되고 1981년에 경기도 산하의 시로 승격했으며, 광명시 승격에 실망한 광명주민들이 서울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질학적으로는 편마암 기반의 퇴적층 지대로 알려진 편이지만, 서울시립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기사) 영등포와 광명 일대가 석회암 지대라고 한다 

그러나 구 시흥군의 계승 의식은 없다시피한데, 현대에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른바 개봉 60만 단지)되어 도시 꼴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전에는 강 갈대밭 건너 바로 옆에 읍내, 그리고 그 읍내 너머에 시내[10]가 있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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